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꿈을 되살려줄 수 있을까. 내년 대선에서 재선 여부가 불투명해진 오바마 대통령은 킹 목사 기념관이 워싱턴DC 내셔널 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계기로 새로운 열정을 되새기고 있다.

16일 낮 워싱턴DC 내셔널 몰에서 열린 킹 목사 기념관 헌정식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흑인들 위주의 청중들은 킹 목사와 오바마 대통령을 연결지으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4년 더’를 외쳐댔다. 오바마 대통령도 “킹 목사의 신념을 배우자”며 전례 없이 열정적으로 연설을 했다.

킹 목사 기념관은 지난 8월 말 개관됐으나 허리케인 아이린의 영향으로 헌정식이 연기됐다가 이날 열렸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50만명의 인파가 다녀갔을 정도로 워싱턴의 새로운 상징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워싱턴 내셔널 몰에 위치한 유일한 흑인 지도자 추모공원이기도 하다. 내셔널 몰에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에서도 에이브러햄 링컨과 토머스 제퍼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3명의 대통령 기념관만 들어설 수 있도록 허가된 지역. 이곳에 킹 목사 기념관이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다. 미국의 역사이자 상징이 된 것이다.

헌정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킹 목사의 1963년 명연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호와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인 ‘나는 변화를 믿습니다(I believe in change)’라는 문구가 함께 적힌 티셔츠를 입고 두 흑인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킹 목사가 우리의 양심을 흔들었다”면서 “킹 목사의 신념과 정신이 아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킹 목사가 살았던 시기에 맞닥뜨린 빈곤, 경제적 불평등, 저항, 냉소주의 등이 지금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며, 킹 목사의 임무는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화당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을 킹 목사와 비유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킹 목사가 역경을 만나고 실망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현재의 상황을 수용하지 않고 저항해야 하는 바를 위해 싸웠다”면서 “(나도)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노래를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셸 오바마 여사, 두 딸과 함께 지난 14일 밤 킹 목사 기념관에 들러 별도로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킹 목사로부터 영감을 필요로 하는 듯했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