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 유럽을 휩쓰는 미국식 양육

  • 올카 메킹
  • BBC 워크라이프

역사적으로 유럽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관해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중 양육(intensive parenting)을 택하는 유럽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 번은 헤이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난 한 여성이 당시 3개월이었던 우리 아들을 칭찬한 일이 있었다.

그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라며 "영민한 것 같아요. 틀림없이 아주 총명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았다. 당신의 아이가 차세대 아인슈타인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기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여자의 말이 유럽인들의 양육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양육방식에는 지리적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2009년 여러 나라 학자들이 함께 '국가별 부모들이 자녀에게 원하는 특성'을 조사했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부모들은 휴식, 청결, 꾸준함 등을 원했다.

이탈리아에선 부모들이 무난한 성격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유쾌한 성격을 자녀가 지니길 선호했다.

한편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똑똑하거나", "인지적으로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의 선호도는 미국 양육방식에 나타났던 변화를 보여준다.

1980년대의 '열쇠아동(latchkey kids,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에서 '헬리콥터 부모(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로의 변화다.

하지만 이곳 유럽 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더 많은 부모들이 미국식 집중 양육을 택하고 있다.

불평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문가들이 하는 조언 확산하는 현상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미국의 방식을 유럽이 따라가게 될까? 집중 양육은 더 심화될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양육

집중 양육을 연구하는 코넬 대학 사회학 패트릭 이시즈카 교수는 "집중 양육은 상당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계획하기 때문이다.

학교나 여러 기관을 통해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

일부 부모들만 이러한 교육을 시키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시즈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양육 문화 모델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 설명,

과거에 비해 부모들이 자녀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하지만 미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2016년 미국과 이탈리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 선진국 기준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11개국의 부모들을 연구하고 1965년의 자료와 비교했다.

과거에 비해 어머니들은 하루 평균 한 시간 가량을 더 육아에 쓰고 있었다.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은 과거 하루 16분에서 2012년 59분으로 증가했다. (이 경향을 따르지 않는 유일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들이 양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부모들에게서 양육 시간 증가 경향이 나타났다.

이 연구에 참여한 주디스 트레스는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긍정적인 인지와 행동, 학문적 성취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신념이 서구 국가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았고, 이후에는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The Happest Kids in the World)"이라는 책에서는 네덜란드를 역사적으로 양육에 대해 느긋한 태도를 취하는 나라로 묘사한다.

네덜란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고, '협력과 팀워크'가 '교육적 성취'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의 스케줄이 점점 더 짜여진 형태가 되고 있다.

정부 지원 연구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여전히 행복하지만 학문적 압박감에 훨씬 더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룩셈부르크 대학에서 자본환경이 양육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프레데릭 드 몰에 따르면, 변화 추세는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과거 부모들의 역할은 자녀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잘 성장하게 하는 데 있었고, 교육과 관련된 부분은 주로 학교에 맡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제 자녀의 학습에 더 많이 관여하고 있고, 교사들과 더 많이 교류하려 한다.

그는 유럽을 포함해 각지에서 불평등의 커지자,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봤다.

미국의 학자이자 '사랑, 돈, 양육: 자본 환경은 양육방식을 설명해준다(Love, Money and Parenting: How Economics Explains the Way We Raise Our Kids)라는 책의 저자인 마티아스 돕케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돕케는 "만약 불평등도가 매우 높다면, 부모의 관점에서는 아이가 뒤쳐지지 않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며 "그래서 부모들은 더욱 집중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양육 방식을 택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평등을 줄이는 복지 시스템으로 유명한 사회에서도 집중 양육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16년 스웨덴의 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과외 활동이 아이들이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으며 이를 촉진하는 것을 이상적인 육아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외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중산층과 서민층 학부모들의 견해도 비슷했다.

이 연구는 "각계층에서 이처럼 공통적인 견해가 나타나는 것은 집중 양육이 스웨덴의 양육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아이슬란드 대학의 수나 시몬나도티르는 최근 연구에서 불평등이 비교적 적게 나타나는 국가 아이슬란드에서 모유 수유나 아기 업기 등과 같은 애착 양육 관행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애착 양육을 집중 양육의 한 유형으로 보고 있다).

더 많은 충고, 더 많은 사례

이러한 연구들은 경제적 불평등이 단지 퍼즐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부분을 암시한다.

2003년 저서 '불평등한 어린 시절(Unequal Childhoods)'에서 사회학자 아네트 라로는 양육이 사회계층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주장했다.

중산층 부모들은 보다 집중적인 양육 방식을 취하는 반면, 저소득층 부모들은 보다 손을 놓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육아 자문을 연구하는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의 캐나다 사회학 교수인 린다 퀴르케는 "이전에는 집중 양육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집단에서도" 집중 양육이 생겨나면서 계층간 차이가 약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외 활동에 대해 공통된 태도를 발견한 스웨덴의 연구는 취학 전 시기가 양육 관행을 만드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봤다.

이 연구는 "스웨덴 미취학 아이들은 평일의 대부분을 보육 시설에서 보낸다"며 "따라서 부모와 자녀 모두 고학력 보육 교사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육아에 노출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노동자 계층의 부모들은 무책임한 부모로 보여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과외 활동을 시킨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육아 책, 블로그 게시물, 그리고 양육 관련 기사들의 엄청난 양을 지적한다.

린다 퀴르케는 "'What to Expect When You're Expecting'같은 전통적인 육아 조언서가 오랜 시간을 거쳐 더 분량이 길어지는 것을 보면, 오늘날 양육에 대한 조언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들이 전문가의 조언에 회의적이면서도,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조언을 접하면 '아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구나'라고 말하죠.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맥락의 일부로서 조언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유럽 양육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지표는 언어학이다.

나의 모국어인 폴란드어에서는 '자녀 기르기'에 해당하는 전통적인 단어 'wychowanie dzieci' 대신에 'rodzicielstwo'가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독일의 부모들은 아이 양육을 'Kindererziehung'이라고 불렀었지만, 지금은 '부모로서의 행동'을 뜻하는 'Elternhandeln'이라는 말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드 몰은 "부모라는 개념에 자식들을 원만하고 완전하며 성공적인 인격체로 만드는 노력이 포함된다면, 'Erziehung(양육이라는 뜻의 독일어)'만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지속될까?

양육의 집중화는 국가, 부모,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문제점 중 하나는 집중 양육이 경제적 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부분이다.

이시즈카는 아이들의 재능과 관심사 개발에 강조를 덜 하던 1960년대에는 사회 전 계층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쓰는 시간과 돈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집중 양육은 또 부모들, 특히 양육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는 어머니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2012년에 미국에서 나온 한 연구에서는, 양육에 더욱 몰두할수록 어머니들의 우울감과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집중 양육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고 있다.

작년 이시즈카는 미국 각 사회계층에서 부모의 기준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부모들은 "여러 상황에 걸쳐 집중 양육을 상당히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양육과 관련된 시나리오를 보고, 연구 참가자들은 집중적인 양육 방법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 몰은 유럽인들이 양육에 대해 조금 더 느긋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정이 이미 가혹한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아이가 뒤쳐질 수 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만약 미국 부모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양육 방식에 대한 책을 보고 뭐든 받아들인다면, 향후 양육 방식은 되돌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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