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어빙이 계속 백신을 거부하자 네츠 구단은 그를 전력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어빙은 약 412억 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빙이 왜 백신을 거부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저 백신을 거부할 자유가 있으며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말할 뿐이다. 어빙은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진 유별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백신 거부자 중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좀처럼 백신 접종률이 오르지 않는 미국 시민이자, 특히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큰 집단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게다가 그는 주민의 1/3이 아프리카계일 정도로 흑인 공동체가 발달한 뉴욕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하는 팀에 소속돼 있다.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백신 거부자들은 이미 어빙을 자신의 아이콘으로 추대하고 있다. 이처럼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타의 백신 거부 사건은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백신 거부자들의 등장 2021년 인류는 지구적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 백신 개발 외에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난한 나라들에 백신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9월 30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 국가의 전체 인구 중 4%만이 백신을 접종했다. 특히 아프리카 54개국 중 절반은 접종률이 2% 미만에 그쳤다. 북한처럼 정치적 -- 문제다. 이들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백신 개발 초창기부터 백신을 맞도록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을 때는, 백신을 맞으면 사람이 소가 된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1853년 천연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영국 정부는 더욱 조직적인 반대 운동에 직면했다. 오늘날 징병 거부자를 가리키는 ‘양심에 따른 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라는 단어도 그 당시 백신 접종 거부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먼저 사용됐다. 다행히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백신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해소됐다. 종교적인 이유로 백신을 거부한 집단들도 상당수가 태도를 바꾸었다. 수혈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여호와의 증인은 1931년부터 백신 접종 거부 입장을 채택했지만 1952년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백신 제조에 사용되는 돼지 젤라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두 종교의 성직자들은 백신을 접종해도 된다고 판단했고, 백신 제조사들도 종교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돼지 성분을 포함하지 않는 쪽으로 제조법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백신 거부자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 홍역 집단 발생을 계기로 백신 거부자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백신 거부 운동단체가 보수 정치권과 결합해 백신 관련 입법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행히 최근까지 백신 거부자들의 존재와 영향력이 아주 심각한 문제로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빨리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면서, 백신 거부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더 이상 주변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낮은 백신 접종률과 인 -- 흑인의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 미국에서 코로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종 집단인 흑인이 가장 낮은 백신 접종률과 거부감을 보인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백신을 거부하는 동기는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이들이 비합리적인 백신 음모론을 신봉하는지, 부작용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접종을 주저하는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주목할 점은 백신 거부 집단으로서의 흑인은 이전의 전형적인 백신 거부자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의 백신 거부자들과 단체는 주로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나타났고, 공화당이나 극우 정치 세력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흑인의 낮은 백신 접종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백신 거부자들에 대한 접근법과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흑인의 백신 불신에 대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국의 인종주의다. 미국의 보건의료 분야에는 명백히 인종차별적인 관행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때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이슈화됐다.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USPHS)이 터스키기 연구소와 협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