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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해외칼럼] 백신 거부자들과 '돌팔이 약장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건강식품기업 재정지원 받는 극단주의자

코로나 백신접종 거부 부추기고 이득 챙겨

약장수 노릇 극우세력 정치판서 퇴출시켜야

폴 크루그먼




요즘은 ‘경제적 불안감’에 관한 이야기가 잠잠해졌다. 관측통들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파가 경제적 포퓰리즘이 아닌 인종적·사회적 적대감에서 부양력을 얻는다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적 극단주의에는 분명 경제적 요소가 담겨 있다.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주류에 속한 보수 언론의 상당수가 건강보조식품과 기적의 만병통치약을 판매하는 기업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속된 말로 ‘뱀 기름 약장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같은 재정지원은 우파를 더욱 극단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실 우익 극단주의는 우연히 뱀기름 판매상들의 자금지원을 받게 된 이념 운동이 아니다. 솔직히 이들이 표방하는 극단주의의 일부는 구성원들의 확고한 신념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그저 ‘뱀 기름’ 선전을 위한 방편에 불과한 듯 보인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미국인들이 서 있는 현주소부터 살펴보자.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효과적인 백신 개발로 팬데믹은 조만간 종식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팬데믹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코로나19 환자 입원률은 지난 겨울의 고점에 바짝 접근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전염성이 높은 델타변이 바이러스 탓이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백신접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정치적인 이유로 백신을 거부한다. 백신 미접종자들 가운데 상당수의 비(非)트럼프주의자가 섞여 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기록한 득표율과 백신접종 사이에는 뚜렷한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7월 현재, 자칭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 86%가 한 차례 이상 백신접종을 받았다고 밝힌데 비해 같은 대답을 한 공화당 지지자는 54%에 불과하다.

백신 거부자들은 생명을 구하는 백신을 거부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대안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 우리는 가축 구충제인 이버멕틴의 급속한 판매증가와 이에 비례해 늘어나는 심각한 부작용 사례를 목격하고 있다. 이버멕틴은 최근 소셜미디와 폭스 뉴스를 통해 코로나19 치료제로 대대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당연히 예측했어야 했지만 솔직히 필자는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역사학자인 릭 펄스타인이 정확하게 지적했듯 돌팔이 약장수와 우익 극단주의자들 사이에는 분명 기나긴 연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들의 주요 고객은 대체로 동일하다.

다시 말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케냐 태생이고, 지난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표를 바꿔치기하는데 여러 대의 이탈리아 인공위성이 동원됐다는 따위의 허황된 음모론을 덥석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은 의료분야의 엘리트들이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며 백신접종을 받으라는 그들의 충고를 무시한 채 가축구충제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구입하는 사람들과 거의 일치한다.

일단 뱀 기름과 우익 정치 사이의 고리를 예민하게 인식하게 되면 사방이 온통 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파가 번성하는 습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예컨대 음모론을 내세워 팔로워를 확보한 인포워즈 운영자인 알렉스 존즈는 건강식품보조제 판매로 돈을 벌었다. 주류 제도권에 속한 우파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파 지식인으로 간주되는 벤 샤피로 역시 건강보조식품을 선전한다.



폭스 뉴스의 터커 칼슨 쇼에서 누가 주요 광고주인지 찬찬히 살펴보라. 폭스 이외의 최대 광고주는 마이 필로우이고 그 다음이 3개의 영양보조제 업체들이다.

뱀 기름 행상인들은 우파 뉴스와 논평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그들의 귀중한 상품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실제로 많은 우파성향의 미국인들이 백신을 진보진영의 음모로 규정하고 의심스런 대체물에 의존하려든다.

그러나 흥미로운 질문은 우파 정치와 뱀 기름 마케팅 사이의 연결정도가 정치지형을 조성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느냐이다.

극단주의에는 큼직한 금전적 이익이 따른다. 왜냐하면 극단주의 정치는 이윤이 대단히 높은 약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2014년 알렉스 존스가 올린 연소득 2,000만 달러는 주로 건강식품 보조제 판매에서 나왔다. 혹시 이런 금전적 보상이 평론가들을 더욱 극단으로 몰아가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수주의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듯 금전 인센티브는 대단히 중요하다.

언론계 인사들의 극단주의는 정치인들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급기야 그들의 청중을 급진화한다.

이쯤 되면 백신이 어떻게 문화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미국인들의 팔에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 민주당 대통령의 최우선 과업이기 때문에 백신접종은 조 바이든의 실패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밀도 높은 적대감을 생성한다.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배척하고, 돌팔이 약장수의 뱀 기름을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우파진영의 사람이라면 최근 도널드 트럼프가 대중집회에서 백신접종을 권고했다가 야유를 받는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두 번 다시 백신접종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나올 숱한 미래의 트럼프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정직한 논객들과 정치인들이 악용하는 분노와 불신이라는 분위기가 없다면 앞에서 언급한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주의자들의 약장수 노릇은 보수주의자들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드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기에 계속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고, 그 부분적 이유는 뱀기름 판매상들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자체는 그리 나쁜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지만, 진짜 불량한 약품은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야바위 정치판에서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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