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싫다" 떠난 직원에 美병원 백기…'감염 폭탄' 우려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2021.12.15 05:00

미국 내 일부 대형병원에서 직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를 중단했다. 백신을 맞느니 병원을 그만두겠다며 떠나는 직원이 늘면서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간호사 헤더 오르테가(오른쪽)와 그의 손녀 나탈리가 지난 9월 LA 시청 앞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간호사 헤더 오르테가(오른쪽)와 그의 손녀 나탈리가 지난 9월 LA 시청 앞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美법원 "의료직원의 백신의무화 중단" 판결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의료법인인 HCA헬스케어를 포함해 테넷 헬스케어와 비영리기구인 클리블랜드클리닉과 어드밴트헬스 등이 직원들에 대한 백신 의무화 조치를 철회했다.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다음달 4일까지 국가건강보험제도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에 참여한 병원들을 대상으로 소속 직원의 백신 2회 접종을 의무화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 자료(9월 기준)에 따르면 전국 2000여 개 병원에서 일하는 근로자 중 30%가 백신 접종을 받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지난달 루이지애나 연방법원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가 의료 종사자에 대한 백신 접종 의무화를 지시할 권한이 없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명령을 중단시켰다. 이번에 대형병원들이 백신 의무화 조치를 철회한 것은 이 판결에 따른 것이다.

WSJ은 의료 종사자에 대한 백신 의무화 조치가 의료계 인력난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델타변이로 인해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병원은 간호사를 포함해 방사선사·물리치료사 등 기술자, 심지어 청소 담당 직원까지 인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백신 의무화 조치까지 내려지자 수많은 직원이 업계를 떠났다는 것이다.

루이지애나 법무장관 제프 랜드리가 미국 대법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방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루이지애나 법무장관 제프 랜드리가 미국 대법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방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컨설팅 회사 머서의 규제업무 책임자인 웨이드 사이먼스는 “의료계 종사자의 대규모 엑소더스가 있었다. 백신 접종을 강제하지 않는 의료 시설들은 쉽게 노동력을 유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법인 발라드헬스의 알란 레빈 최고경영자(CEO)는 “루이지애나 법원의 판결이 의료계 인력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1만4000명 중에 2000명이 백신 접종을 받지 않았다”며 “이들을 모두 해고했다면 우리 시스템에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일자리를 그만둔 간호사가 수천명에 달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의료계 종사자에 대한 백신 의무화 조치 시행을 예고한 지난 10월 미국 곳곳에서 의료인들이 수술복을 입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뉴햄프셔주 콩코드시에서 시위에 참석한 간호사 레아 쿠시먼은 BBC에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의 주권을 공격하고 있다. 의료 종사자들도 자신의 몸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다른 간호사들은 “접종 완료자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백신 대신 정기검사 의무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호사 카리 게이트가 지난 8월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간호사 카리 게이트가 지난 8월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직원 백신접종률 낮으면 환자 감염률 높다" 연구결과

하지만 의료시설 직원들의 백신 접종률이 낮을수록 환자의 코로나19 감염 건수와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이 지난 8일 발표한 저널에 따르면, 요양원 직원들이 시설 내 코로나19 감염의 주 원인으로 나타났다. 또 직원의 백신 접종률이 가장 낮은 비교군에서 요양원 거주자의 감염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요양원 직원에 대한 백신 접종률을 높였다면 지난 여름 4775건의 환자 감염과 703명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직원들의 백신 접종을 자율화한 것이 자칫 시설 내 감염을 높이는 딜레마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외신은 미국 내에 빠르게 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도 의료 종사자의 백신 거부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고 전했다. 14일 블룸버그통신 등은 존슨홉킨스대 데이터를 인용해 미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누적 5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지난 13일 기준 미국 내 누적 확진자는 5000만9507명, 사망자는 79만7900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질병대책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신규 확진자 99%는 델타 변이에 감염됐고, 오미크론 확진자는 10일 기준 25개 주에서 확인됐다. 코네티컷밸리병원의 스콧 콜비 CEO는 “의료계 관련자들은 환자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백신 접종 의무화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준비 중인 간호사의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준비 중인 간호사의 모습. 연합뉴스

환자의 안전을 위해 직원들의 백신 의무화 규정을 유지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21만 명의 직원을 고용한 의료법인 카이저퍼머넌트는 이달 1일까지 전직원에게 최소한 1차 접종을 마치라고 통보한 뒤 이를 지키지 않은 352명을 해고했다. 다음달 초까지 백신접종을 완료하지 못한 직원들도 해고 대상이다. 7만7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노스웰헬스는 백신 접종을 거부한 직원 1400명을 지난 10월 해고한 바 있다. 이 업체 대변인은 “백신 거부자는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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